디모데후서 3장에서 말하고 있는 마지막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와 경건의 실종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기도에 대하여 이야기 하시면서 예를 드셨던 것이 누가복음 18장의 과부의 비유입니다. 낙심하지 말고 항상 깨어 기도할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 예를 든 것이 바로 과부의 비유였습니다.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에게 나가서 매일 원수를 갚아달라고 하는데,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과부가 원수 갚아달라고 하면 무슨 원수를 갚아달라는 것입니까? 남편 죽인 원수를 갚아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원수 갚아달라고 나오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남편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이야기 하면 남편을 죽인 원수를 갚아달라고 말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 남편을 죽였는데,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이 세상을 향하여 신원하며 주의 오심을 기다려야 하는데, 주님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게 되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 사람의 마음 안에 기도를 죽이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인자가 다시 올 때에 이 믿음을 보겠느냐 하신 것입니다.
끝까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 오십시오” “주님 세상을 심판하여 주십시오” 해야 하는데, 세상은 그 중심에 하나님을 두지 않는 인간들끼리 행복한 세상을 만드려고 애쓸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주님을 향한 사랑이 점점 식어지며 기도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시대의 이런 비참한 징조를 방지하는 유일한 대책은, “바룩 하바 베쉠 아도나이”(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라는 고백의 영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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